음악에 재능을 드러내 9세 무렵부터 파리로 건너가 음악원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생상스와 인연을 맺게 되어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의 작품을 배우고 여러 과목에서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 작곡가와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한다. 스승과 마찬가지로 특출한 오르가니스트였던 포레는 마들렌 교회에서 연주를 하게 되는데 레퀴엠은 그 시절의 작품이다. 1888년 첫 초연 이후에 두 차례 개정을 해 판본에 따라 연주형태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교회의 예식을 위한 버전이 앞의 판본이라면 콘서트홀을 염두에 두고 개작한 것이 뒤의 판본으로 해석된다. 그가 이 레퀴엠을 작곡하게 된 계기에 대해 포레는 어떠한 특정이유로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음악적 기쁨을 위해서 작곡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작곡을 시작하기 몇 해 전에 포레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곡이 진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부모를 위한 레퀴엠으로 여기고 있다.
이 3대 레퀴엠 중에서도 포레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더불어 죽은 자 뿐만 아니라 산 자들의 고요한 위로라는 레퀴엠 본연의 의무라는 측면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그 생명을 잃고 있지 않다. 사실 베르디의 레퀴엠은 그 극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레퀴엠의 탈을 쓴 오페라’라는 혹평을 받아 왔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미완으로 끝난 것을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완성했다고 볼 때 포레의 레퀴엠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진혼곡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
후기 낭만파의 거장인 포레는 아마도 후기 낭만파 작곡자 중에 가장 독특한 인물이었다. 동료 음악가들과는 달리 그는 그 자신만의 절제와 단정함의 미덕을 가지고 조용하지만 꾸준한 작품활동을 했다. 놀랍게도 백정집안 출신인 포레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교회당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한 한 맹인 노파에 의해서 9살에 니더마이어 음악원으로 보내진다. 그의 천재성을 간파한 니더마이어는 무료로 그를 교육시키고, 뒤이어 생상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는 프랑스 음악계의 거장으로 훗날 라벨을 가르침으로서 프랑스 음악의 계보를 이어간다. 나중에 귀를 먹지만 계속 작곡생활에 정진하다 조용히 사라진 그의 단아한 일생은 마치 그의 레퀴엠의 마지막 악장인 ‘In Paradisium’ (‘천사들이 그대를 천국에서 맡기를...‘)을 듣는 듯한 인상을 준다.
포레의 레퀴엠은 예상외로 많은 녹음이 있지만 왠지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연주되지 않고 많은 음악애호가들에게도 생소한 곡목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작곡가 자신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탓인 듯하다.
그러나 한번 들으면 헤어나기 힘든 매력을 이 신비스런 곡은 가지고 있다. 이 곡 중에 특히 Pie Jesu(피에 예수)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 레퀴엠의 Pie Jesu(녹음 당시 로이드 웨버의 부인이었던 사라 브라이트만과 보이 소프라노의 이중창으로 이 곡을 한번 들어 보시라)와 더불어 음악사상 가장 아름다운 피에 예수일 것이다. 이 곡은 여러 판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연주마다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몇 년에 걸쳐 작곡되었고 1885년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완성된 이 곡은 여러 판본으로 변형되었다. 또한 소프라노 대신 보이 소프라노(트레블)를 기용한 판들도 꽤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곡의 순수성을 강조하는데 유리한 보이 소프라노가 이 곡의 진수를 전하는데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은 1900-01년 판본(풀 오케스트라 판, full orchestra version)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점차 포레 레퀴엠 아름다움의 본질인 간결함과 청아함을 나타내는 1893-94년 오리지널 스코어(실내악 판, chamber orchestra version)가 인기를 얻고 있다.
풀 오케스트라 판본(1900-01판)의 대표적인 연주는 앙드레 클뤼탕(Andre Cluytens)이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Victoria de los Angeles)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가 노래한 판(EMI/Angel, 1986)이다. 비록 오리지널 판본은 아니지만 오리지널의 정신을 살린 높고 기품 있는 정신세계는 오랫동안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로스 앙헬레스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일품이다. 한 동안 이 곡의 결정판 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현대에 와서 녹음된 1900년 판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샤를 뒤트와(Dutoit)가 몬트리얼 교향악단을 지휘하고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와 셰릴 밀른즈(Milnes)와 공연한 Decca/London 판과 미셸 르그랑(Legrand)이 필하모니아를 지휘하고 바바라 보니(Bonney)와 토마스 햄프슨(Hampson)이 공연한 Teldec 판(1994)이다.
뒤트와의 (약간은 풍려하지만) 깔끔한 지휘 하에 카나와와 밀른즈가 오페라 스타일로 해석한 Decca 판은 포레 레퀴엠의 본질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샹송 작곡가/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자신이 부른 샹송 ‘세상 끝의 향기’로 유명한 만능 예술인 미셸 르그랑은 여기서 놀랄 정도의 훌륭한 연주를 보여준다.
뒤트와 판처럼 이 곡의 본질에는 벗어났지만, 이 곡의 드라마틱한 부분과 서정적이고 청아한 부분의 대비를 명확히 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나간다. 보니의 소녀같은 가창도 이 판의 매력이다. 녹음상태도 일급이다.
카를로 마리아 쥴리니(Giulini)가 캐슬린 배틀(Battle)과 함께 한 판(DG)도 무난하다. 그 외에 네빌 매리너(Marriner)가 실비아 맥내어(McNair)와 토마스 알렌(Allen)과 1900년 판을 기본으로 오리지널 판을 절충한 연주(Phillips, 1993)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훌륭하다고 한다.
1900년 판 중에서도 소프라노 역을 보이소프라노가 대신한 몇 가지 판들이 있다. 그 중 제일 빼어난 판은 미셸 코르보(Michel Corboz)가 베른 심포니를 지휘하고 클레망(Clement, boy soprano)과 위탕로셰(Huttenlocher)와 녹음한 Erato 판(1972)은 소박하고 담담하게 이 곡의 본질에 다가간다. 매우 종교적인 해석인데 특히 클레망의 순도 높은 가창은 아름답다.
같은 의미에서 조나단 본드(Bond, boy soprano), 벤자민 룩손(Luxon), 조지 게스트(Guest)지휘 Academy of St. Martin-in-the-Fields (Decca/London, 1975)는 1900년 판을 축소한 형태로 두 판본의 장점을 결합한 듯한 느낌을 준다. 훗날 직접 이 곡을 지휘하는 클리오베리가 오르간을 쳤다. 보이 소프라노 본드는 소년답게 부르는데, 중간에 목소리가 끊어지는 실수(?)를 한다. 혹자는 일부러 소년의 순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그런 것 같다고 하지만 아마 호흡이 짧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반대로 영국에서 스타로 떠오른 알레드 존스(Aled Jones, boy soprano)가 스티븐 로버츠(Roberts)와 함께 한 리처드 힉콕스(Hickox)판((Carton/RPO, 1986)은 아쉬운 연주이다. 존스는 타고난 미성으로 지금의 걸 소프라노(?)인 샬롯 처치(Church)만큼이나 명성을 떨친 영국의 보이 소프라노인데 (그는 독집도 냈었다), 여기서 약간 뽐내는 듯한 태도와 기교를 보여, 포레의 취지와는 영 동떨어진 연주를 한다. 힉콕스는 약간 빠른 템포로 역시 작은 스케일의 1900년 판으로 물 흐르듯이 연주한다. 커플링인 번스타인 작곡의 Chichester Psalms도 훌륭한 연주이다.
작곡가이자 음악학자/합창지휘자인 존 러터(Rutter)는 1893년 오리지널 판본을 재구성하여 이른바 오리지널 판본 르네상스를 연 사람이다. 이 후 오리지널 판이 더 인기가 많아진 것은 전적으로 러터의 공이라 할 것이다. 애쉬튼(Ashton), 바코(Varcoe), 그리고 그의 수족과 같은 캐임브리지 합창단과 함께 한 이 실내악 판의 효시(Collegium, 1985)는 이 후 더 훌륭한 연주가 나왔지만 역사적인 가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 해 그라모폰 상을 수상한 이 녹음은 목관이 없는 저역 현악(lower strings)합주로 신선한 매력을 제공한다.
그 이후 봇물처럼 오리지널 판본 연주가 (러터 교정판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교정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대표적인 연주들은 공히 러터 교정판을 쓰고, 1989년에 같이 발매되고, 같은 잉글리시 실내 관현악단(ECO)을 기용한 매튜 베스트(Best) 판(시어스/조지, Hyperion)과 스티븐 클리오베리(Cleobury) 판(에티슨(boy soprano)/머레이/배어, 킹즈 칼리지 합창단, EMI/Angel)다. 두 판은 러터의 연주에 필적할 만한, 혹은 능가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오리지널 판본 연주로서 제일 훌륭한 것은 요즘 한참 성가를 높이고 있는 필립 에레베게(Herreweghe)의 하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 1989)판이다. 에레베게는 녹음 직전에 발견된 1894년 판본에 의거하여 그의 연주를 전개해 나갔다. 그는 약간 느린 템포로 포레의 단아한 세계를 정치하게 그리고 있다. 독창/합창진(파리 샤펠 로얄 합창단)과 혼연일체가 되어 무지크 오블리크 앙상블은 이 숭고한 음악을 훌륭히 연주한다. 특히 아그네스 멜롱(Agnes Mellon, 소프라노)은 보이 소프라노에 필적할 정도로 무기교의 순수함을 표현해주고 있다. 아마도 이 곡을 부른 소프라노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가창이 아니가 싶다. 진지하면서도 고상한 분위기 속에서 에레베게는 포레가 뜻하였던 바대로 경건하게 이 곡을 이끌어 가고 있다. 합창도 빼어나며 녹음상태도 좋다.
존 엘리엇 가디너는 캐서린 봇(Bott), 카슈마이유(Cachemaille)의 성악진과 혁명과 낭만주의 오케스트라(ORR)와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이끌고 정격연주로서의 레퀴엠을 들려준다 (Phillips, 1994). 솔로 바이얼린이 첨가된 그의 정격연주는 언제나 그렇듯이 색다른 맛을 보여준다. 리처드 말로우(Marlow)도 정격연주는 아니지만 가디너와 같은 판본으로 비슷한 연주 스타일을 선사한다 (오타키/그리피스, 트리니티 대학 합창단, 런던 무지치, Conifer, 1990).
이 곡을 싸게 (그러나 결코 값싼 연주가 아니게)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낙소스 (Naxos)가 내놓은 제레미 서멀리(Summerly) 판(벡클리/게지, 1993)이 좋다. 클래식 음악을 값싸게 그러나 수준 높게 공급해 주기로 유명한 낙소스 레이블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직접적이고 가식 없는 녹음으로 이 곡을 아쉬움 없이 들려준다. 오리지널 판본에 근거한 1983년의 데니스 아놀드 교정본으로 연주되는 이 판에는 레퀴엠 이외에 듣기 힘든 다른 포레의 작품들과 비에르느(Vierne), 세베락(Severac)의 매력적인 작품들도 같이 들어있다.